「엄마라는 이상한 나라」
7화. 집 밖에서는 평범한 엄마
아이들이 어렸을 땐 적어도 기준만큼은 분명했다.하지만 그 단단하던 신념도, 명료하던 육아 방침도 어느새 흐려져 있었다. 남은 건 혼란뿐이었다.화내는 날이 쌓이자,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버거운 날이 생겼다. 그러다 의견이 부딪히거나 떼가 시작되어 내 감정이 터지는 날이면, 나는 또 아이들을 무섭게 다그쳤다. 누군가 말리려 들면 더 거세게 다그쳤다. 그래서 그런 날엔 남편조차 내 곁에 오지 못했다.이상한 엄마였던 나는 어느새 무서운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떤 날은, 괴물 같은 엄마였다. 아이들이 가끔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속상한 일도, 신나는 일도, 대부분은 아빠에게 먼저 달려갔다. 그 작은 뒷모습들을 나는 멀찍이서 바라보곤 했다. 왜 그러는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한때는 아이들을 ..
2026. 11. 6. 23:10
「엄마라는 이상한 나라」
6화. 말이 통하는 아이들 앞에서
아이들이 어릴 땐, 내가 힘든 이유가 분명하다고 믿었다.할 줄 아는 게 너무 적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해서. 그래서 답답한 거라고, 그래서 내가 더 힘든 거라고... 그러니 크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스스로 하는 일이 늘면 내 손도 덜 갈 테고, 집안일도 육아도 도맡다시피 하는 남편도 한숨 돌릴 테고. 아이들이 내 말을 알아듣고 내가 아이들의 말을 알아듣게 되면, 이 낯선 나라도 조금은 살 만해질 거라고.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자랄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어두운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할 줄 아는 게 늘어난 만큼 고집도 자랐다. 성향이 정반대인 두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혔다. 밖에서 어디선가 배워 온 나쁜 말들이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집 안으로 들..
2026. 11. 4. 22:48
「엄마라는 이상한 나라」
5화. 처음 '엄마'라고 불린 날
그런데도 이 낯선 나라에서의 나날이 마냥 우울하고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아이의 웃음은 언제나 순수함 그 자체였다. 사회생활에 찌들어 있던 나에게는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악의라고는 조금도 없는 웃음이었다. 지치고 화가 나 있다가도 아이가 해맑게 다가와 안겨오면, 그 작은 몸의 온기에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되곤 했다. 말도 못 하면서 눈빛으로 엄마를 부르던 얼굴. 아, 이래서 다들 아이를 낳는구나. 그 황홀함에 한참 동안 아이를 안고 앉아 있던 날도 많았다. 뒤집기에 처음 성공하던 날, 되집기까지 해내던 날, 배밀이는 건너뛰고 다짜고짜 네발로 기어 다니기 시작하던 날, 무언가를 붙잡고 처음 일어서던 날, 아무것도 잡지 않고 혼자 서 있던 날, 두 발로 뒤뚱뒤뚱 처음 내게 걸어오던 날, 내 손을 잡고 ..
2026. 10. 31. 19:40
「엄마라는 이상한 나라」
4화. 괜찮냐는 말 뒤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엄마! 나 넘어졌어!" 신이 나서 자랑하듯 외치는 소리.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현관으로 나갔다. 아이의 무릎엔 흙먼지 사이로 붉은 생채기가 나 있었고, 반바지 밑단엔 놀이터 모래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 생채기를 보는 순간, 걱정보다 먼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다쳐서 왔다는 것부터가 싫었다."괜찮아? 아프지 않았어?"입에서는 배운 대로 말이 나갔다. 책에서, 영상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한다고 배운 그 말을 가장 먼저 했다.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그 말 뒤에서 나는 이미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친구랑 술래잡기하다가 넘어졌어! 근데 나도 걔 밀었어!" 하고 자랑처럼 떠들어대는 순간, 괜찮냐는 말 뒤에 눌러 두었던 화가 울컥 ..
2026. 10. 29. 17:47
「엄마라는 이상한 나라」
3화. 완벽한 엄마들 틈에서
복직 후 첫 팀 회식 자리였다. 옆자리 동료가 휴대폰을 꺼내 아이 사진을 보여주며 웃었다. "얘 요즘 얼마나 예쁜 말만 하는지 몰라요. 어제는 저한테 '엄마 오늘도 예뻐' 그러는 거 있죠." 다들 웃으며 사진을 돌려 봤다. 나도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저 나이대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나는 왜 저렇게 웃으며 자랑할 얘깃거리가 하나도 없을까.그 동료는 나와 같은 워킹맘이었고,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아이를 낳은 적 없는 사람처럼 완벽한 몸매를 유지했고, 빈틈없이 살림을 해냈고, 무엇보다 아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얼굴에 진짜 사랑이 묻어났다.나는 그 앞에서 한없이 못나고 부족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사실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 저절로 '엄마 모드'가 켜지는 줄 ..
2026. 9. 17. 02:42
「엄마라는 이상한 나라」
2화. 처음이라는 나라의 밤
낯선 나라에도 분명 아름다운 풍경은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내 삶은 온통 '처음'으로 가득 찼다. 뒤집기에 처음 성공하던 날, 되집기까지 해내던 날, 배밀이는 건너뛰고 다짜고짜 네발로 기어다니기 시작하던 날, 무언가를 잡고 처음 일어서던 날. 하루하루가 낯설고, 그래서 더 반짝였다.지치고 화가 나 있다가도 아이가 해맑게 다가와 말도 못하면서 눈빛만으로 엄마를 부르며 안겨오면, 그 체온이 너무 포근해서 나도 모르게 무장 해제되곤 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구나. 그렇게 황홀했던 순간도 분명 많았다. 하지만 그 나라의 밤은 낮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새벽 세 시, 아이는 세 시간째 울고 있었다. 젖을 물려도, 기저귀를 갈아도, 안고 흔들어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창밖은 캄캄했고..
2026. 9. 13. 14:26